퇴직 후 4억2천만원, 예금·채권·ETF에 어떻게 나눌까?|인생 후반전의 돈은 아직 은퇴하지 않았습니다

퇴직 후 4억2천만원을 생활비·안전자산·장기 투자자산의 세 쌀독으로 나누어 은퇴자산을 배분하는 방법을 설명한 이미지

최종 수정일:

은퇴자산 배분을 고민하던 성호 씨는 처음에는 예금에 대부분 넣는 것이 가장 안전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은퇴는 인생의 끝이 아니라 후반전의 시작이라고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퇴직하고 성호 씨에게 가장 많이 생긴 것은 돈이 아니었습니다.

시간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좋았습니다. 늦잠도 자고, 평일 낮에 산책도 했습니다. 미영 씨와 카페에 가서 한참을 앉아 있어도 다음 일정에 쫓기지 않았습니다.

회사에 다닐 때는 책을 사놓고도 몇 달씩 읽지 못했는데, 요즘은 독서량도 부쩍 늘었습니다.

어느 날 서점 베스트셀러 코너에서 《위버멘쉬》라는 책을 한 권 집어왔습니다.

성호 씨에게 니체는 오래전 학교에서 배웠던 ‘초인’이라는 단어 정도로 남아 있었습니다.

그런데 책을 읽다가 생각보다 오래 머물게 된 부분이 있었습니다.

이 책에서 ‘위버멘쉬’는 어느 날 완성되는 특별한 인간이라기보다, 주어진 삶에서 도망치지 않고 자신의 기준으로 선택하며 끊임없이 지금의 자신을 넘어가려는 존재로 그려졌습니다.

성호 씨는 책을 덮고 한동안 가만히 있었습니다.

‘그런데 나는 왜 은퇴하자마자 남은 인생을 지키는 생각만 하고 있었지?’


“회사를 그만둔 거지, 인생을 그만둔 건 아니잖아”

저녁에 미영 씨가 책을 보며 물었습니다.

“요즘 당신 책 많이 읽네.”

“시간이 많잖아.”

“재미있어?”

성호 씨가 잠시 생각했습니다.

“재미있다기보다 좀 뜨끔하네.”

“왜?”

“나 은퇴하고 계속 돈 안 잃을 생각만 했잖아.”

미영 씨가 웃었습니다.

“그럼 돈 잃을 생각을 하겠어?”

“그 얘기가 아니고.”

성호 씨도 웃었습니다.

“회사를 그만둔 거지 인생을 그만둔 건 아닌데, 내가 벌써 남은 인생을 정리하는 사람처럼 생각한 것 같아.”

“그래서?”

“앞으로 뭘 할지도 생각해야지.”

“뭐 하고 싶은데?”

“여행도 좀 더 다니고 싶고. 공부도 하고 싶고. 기회가 되면 작은 일도 하나 해보고 싶고.”

“또?”

“아직 모르지.”

미영 씨가 웃었습니다.

“모르는데 어떻게 해?”

성호 씨도 웃었습니다.

“모르니까 해보는 거지.”

은퇴는 첫 번째 직업에서 내려온 것이지, 삶에서 내려온 것은 아니었습니다.

성호 씨는 58세였습니다.

앞으로 20년을 살 수도 있고, 30년을 살 수도 있습니다.

그 긴 시간 동안 좋은 일만 생기지는 않을 것입니다.

아플 수도 있습니다.

투자한 돈이 크게 떨어질 수도 있습니다.

새로운 일을 시작했다 실패할 수도 있습니다.

반대로 지금은 상상하지 못하는 새로운 재미를 발견할 수도 있습니다.

성호 씨는 문득 4억2천만원을 다시 생각했습니다.

그 돈은 죽을 때까지 손대지 않고 지켜야 하는 유리병 속 돈이 아니었습니다.

앞으로의 삶에서 넘어지더라도 다시 일어설 수 있게 해주는 기반이기도 했습니다.


꽃길만 기다리는 것이 인생은 아닙니다

성호 씨가 책에서 마음에 남은 부분은 또 있었습니다.

살다 보면 고통과 실패를 피할 수 없습니다.

고통이 있다는 이유로 인생 전체가 잘못된 것도 아니고, 힘든 일이 생겼다고 해서 내가 가던 길을 모두 포기해야 하는 것도 아닙니다.

꽃길만 있는 삶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앞으로 나아가는 것.

성호 씨에게는 그 이야기가 이상하게 은퇴 이후의 삶과 겹쳐 보였습니다.

니체는 《우상의 황혼》에서 “나를 죽이지 못하는 것은 나를 더 강하게 만든다” 고 썼습니다.

성호 씨에게는 그 말이 조금 다르게 다가왔습니다.

나를 죽이지 못하는 고통은 결국 나를 더 강하게 만들 뿐이다.

물론, 성호 씨가 그 말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인 것은 아니었습니다.

고통을 일부러 찾아야 한다는 뜻도 아니었습니다.

큰 손실을 입으면 사람이 저절로 현명해진다는 얘기는 더더욱 아니었습니다.

다만, 한 가지는 마음에 남았습니다.

앞으로 어려운 일이 생기지 않게 만드는 것만이 준비는 아니라는 것.

어려움이 와도 무너지지 않고 다시 앞으로 갈 수 있도록 준비하는 것도 중요했습니다.


“그럼 책 한 권 읽고 주식 더 사겠다는 거야?”

미영 씨가 장난스럽게 물었습니다.

“그래서 주식 더 사겠다는 얘기야?”

성호 씨가 웃었습니다.

“왜 그렇게 결론이 나?”

“아까 적극적으로 살자며.”

“적극적인 거하고 무모한 건 다르지.”

“다행이네.”

“수익률 높다고 쌀독 깨겠다는 얘기는 아니야.”

미영 씨가 웃었습니다.

그 말은 중요했습니다.

인생을 긍정적으로 바라본다는 것은 위험을 무시한다는 뜻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위험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한 상태에서 앞으로 가는 것에 가까웠습니다.

투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4억2천만원을 전부 주식에 넣는 것은 진취적인 투자가 아닙니다.

생활비까지 투자해 놓고 주가가 떨어지지 않기만 바라는 것도 적극적인 삶과는 거리가 멉니다.

그건 위험을 받아들인 것이 아니라 위험을 보지 않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금에만 넣어두는 것은 정말 안전할까?

성호 씨는 은퇴 직후에는 생각이 단순했습니다.

월급이 끊겼다.

그러니 원금을 잃으면 안 된다.

그렇다면 예금이 가장 안전하다.

그런데 숫자를 놓고 보니 조금 달랐습니다.

두 사람의 생활비는 월 400만원 정도입니다.

1년이면 4,800만원입니다.

성호 씨가 국민연금을 정상적으로 받기 시작할 때까지는 아직 시간이 남아 있습니다.

투자수익이나 다른 소득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6년치 생활비만 단순 계산해도,

4,800만원 × 6년 = 2억8,800만원입니다.

물론 실제 생활은 이렇게 단순하지 않습니다.

국민연금이 들어오기 시작하고, 미영 씨 연금도 나중에 보태집니다.

반대로 물가는 오릅니다.

자동차를 바꿀 수도 있고 여행도 갑니다.

병원비가 들 수 있고 간병이 필요할 수도 있습니다.

성호 씨가 계산기를 내려놓았습니다.

“예금에 넣으면 돈을 안 잃는다고 생각했는데.”

미영 씨가 물었습니다.

“아니야?”

“갑자기 30% 떨어지지는 않지.”

“그런데?”

“우리가 계속 꺼내 쓰잖아.”

미영 씨가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가격이 떨어지지 않는 것과 자산이 줄어들지 않는 것은 다른 이야기였습니다.


사람은 은퇴했지만, 돈까지 모두 은퇴시킬 필요는 없습니다

성호 씨가 물었습니다.

“그럼 58살이면 주식을 얼마나 해야 하는 거지?”

미영 씨가 오히려 물었습니다.

“그 전에 하나만 물어보자.”

“뭔데?”

“우리가 가진 돈을 내년에 다 쓸 거야?”

“아니지.”

“80살에 쓸 돈도 있겠지?”

“그렇겠지.”

“그러면 그 돈까지 지금부터 전부 예금에 넣어놔야 해?”

성호 씨가 웃었습니다.

“그렇게 말하니까 이상하네.”

58세의 성호 씨에게는 내년에 쓸 돈이 있습니다.

5년 뒤에 쓸 돈도 있습니다.

20년 뒤에야 필요할 돈도 있을 수 있습니다.

사람은 한 번에 늙지 않습니다.

돈도 한날한시에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사람은 은퇴했지만, 돈까지 모두 은퇴시킬 필요는 없었습니다.

그 돈은 성호, 미영과 함께 인생의 후반전을 뛰어야 합니다.


쌀독을 나누는 이유도 다시 보였습니다

두 사람은 이전에 높은 분배금을 주는 ETF를 놓고 고민하다가 돈을 사용할 시점에 따라 쌀독을 나누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습니다.

그때의 이야기는 퇴직 후 4억2천, 연 12% ETF에 넣으면 생활비가 해결될까?|은퇴자의 쌀독 계산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이번에는 그 쌀독을 실제 돈으로 채울 차례였습니다.

그런데 성호 씨가 생각하는 쌀독의 의미가 조금 달라졌습니다.

예전에는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위험한 돈과 안전한 돈을 나누자.

이제는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위험이 닥쳤을 때 버틸 돈과, 시간이 있기 때문에 위험을 감수할 수 있는 돈을 나누자.

비슷해 보이지만 전혀 다른 생각이었습니다.

쌀독을 지키는 이유는 투자하지 않기 위해서가 아니었습니다.

투자한 돈이 떨어졌을 때 쌀독까지 깨뜨리지 않기 위해서였습니다.


4억2천만원을 세 개의 쌀독에 넣어봤습니다

성호 씨가 종이에 숫자를 적었습니다.

4억2천만원.

이번에는 처음부터 수익률을 적지 않았습니다.

먼저 돈이 필요한 시간을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세 쌀독에 이름을 붙였습니다.

첫 번째 쌀독 — 삶을 지키는 돈

두 번째 쌀독 — 시간을 버는 돈

세 번째 쌀독 — 가능성을 키우는 돈

미영 씨가 웃었습니다.

“책 좀 읽더니 쌀독 이름이 거창해졌네.”

“내용만 맞으면 됐지.”


첫 번째 쌀독 1억2천만원|삶을 지키는 돈

첫 번째 쌀독에는 1억2천만원을 넣어보기로 했습니다.

가까운 시기에 필요한 생활비와 비상자금, 갑작스러운 병원비나 간병 초기비용에 대응할 돈입니다.

노후의 비상자금에는 병원비만 있는 것도 아닙니다. 간병이 시작됐을 때 생활비와 가족의 부담이 얼마나 커질 수 있는지는 간병이 시작되면 생활비는 얼마나 늘어날까?|치매·장기요양보험·간병보험까지에서 구체적으로 계산했습니다.

이 돈은 수익률이 낮아도 괜찮습니다.

예금, MMF, 현금성 자산, 만기가 짧은 안전자산처럼 필요할 때 가격 걱정 없이 사용할 수 있는 곳을 중심으로 둡니다.

성호 씨가 물었습니다.

“1억2천이면 너무 많이 놀리는 거 아니야?”

미영 씨가 말했습니다.

“놀리는 돈이 아니라 우리가 안 팔게 해주는 돈 아니야?”

“뭘?”

“주식.”

성호 씨가 잠시 생각하다가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주식시장이 크게 떨어져도 생활비가 필요해서 주식을 팔지 않아도 됩니다.

갑자기 병원비가 생겨도 투자자산부터 처분할 필요가 없습니다.

첫 번째 쌀독의 수익은 이자 몇 %만이 아니었습니다.

위기가 왔을 때 잘못된 선택을 하지 않아도 되는 여유도 이 돈이 주는 수익이었습니다.

특히 국민연금을 언제부터 받느냐에 따라 이 쌀독에서 꺼내야 할 돈의 크기도 달라집니다. 성호 씨의 월 220만원을 기준으로 조기수령과 정상수령·연기수령을 비교한 계산은 국민연금 조기수령 vs 연기수령, 언제 받는 게 유리할까?|월 220만원 손익분기점 계산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두 번째 쌀독 1억4천만원|시간을 버는 돈

두 번째에는 1억4천만원을 넣었습니다.

당장 필요하지는 않지만 3년, 5년, 7년 안에는 사용할 가능성이 있는 돈입니다.

예금을 만기별로 나누거나 국채·우량채권·중단기 채권형 자산 등을 함께 검토할 수 있습니다.

첫 번째 쌀독보다는 약간의 변동을 받아들입니다.

대신 주식처럼 큰 변동까지 감수하지는 않습니다.

첫 번째 쌀독이 줄어들면 이 돈이 뒤를 받쳐줍니다.

시장이 나쁠 때 세 번째 쌀독을 건드리지 않고 기다릴 시간을 만들어줍니다.

성호 씨가 말했습니다.

“여기는 돈을 버는 창고라기보다 시간을 사는 창고네.”

“그러네.”

“주식이 떨어지면 기다릴 시간을 벌어주니까.”

두 사람에게 채권의 역할이 조금 달리 보였습니다.

높은 수익을 내는 주인공은 아니지만, 다른 자산이 제 역할을 할 시간을 만들어주는 돈이었습니다.


세 번째 쌀독 1억6천만원|가능성을 키우는 돈

마지막은 1억6천만원입니다.

전체 금융자산의 약 38%입니다.

성호 씨가 잠시 숫자를 바라봤습니다.

“은퇴한 사람이 이 정도를 주식형 자산에 두면 너무 공격적인가?”

미영 씨가 물었습니다.

“이 돈 내년에 쓸 거야?”

“아니.”

“10년 뒤에도 안 쓸 수 있고?”

“그렇지.”

“그럼 그 돈은 아직 시간 있는 돈이네.”

성호 씨가 웃었습니다.

세 번째 쌀독에는 국내외에 넓게 분산된 지수형 ETF와 배당 성격의 주식형 자산처럼 장기적으로 기업의 성장과 경제의 성과에 참여할 수 있는 자산을 중심으로 생각했습니다.

한두 종목에 큰돈을 걸지는 않습니다.

높은 분배율만 보고 상품을 고르지도 않습니다.

특정 테마가 유망하다는 말에 쌀독을 통째로 옮기지도 않습니다.

진취적인 것과 한탕을 노리는 것은 다른 일이었습니다.

위험을 감수하되, 한 번의 실패가 전체 삶을 흔들지 않게 만드는 것.

그것이 세 번째 쌀독의 원칙이었습니다.


주식이 30% 떨어져도 계획을 계속할 수 있을까?

성호 씨가 물었습니다.

“그래도 주식이 30% 떨어지면?”

두 사람은 가장 나쁜 장면부터 계산해봤습니다.

세 번째 쌀독 1억6천만원이 30% 하락한다면 평가액은 약 1억1,200만원이 됩니다.

4,800만원이 줄어든 것입니다.

성호 씨가 표정을 찌푸렸습니다.

“4,800만원이면 속 쓰리겠는데.”

“당연하지.”

“책에 나온 대로 고난이라고 좋아할 수는 없겠네.”

미영 씨가 웃었습니다.

“그건 좀 갖다 붙이지 마.”

둘이 웃었습니다.

손실은 손실입니다.

주가가 떨어졌다고 기뻐할 이유는 없습니다.

다만 중요한 것은 그다음이었습니다.

첫 번째와 두 번째 쌀독에 2억6천만원이 있습니다.

생활비 때문에 30% 떨어진 주식을 당장 팔 필요가 없습니다.

시장이 회복할 시간을 기다릴 수 있습니다.

성호 씨가 말했습니다.

“그러니까 안 떨어지는 포트폴리오를 만드는 게 아니네.”

“그런 게 있겠어?”

“그렇지.”

“떨어져도 우리가 계획을 바꾸지 않아도 되는 구조를 만드는 거지.”

그 말이 정확했습니다.


위험을 피하는 것과 위험을 견디는 것은 달랐습니다

성호 씨는 그제야 책에서 읽었던 이야기를 다시 떠올렸습니다.

앞으로 고통이 하나도 없는 삶을 만들 수는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손실이 한 번도 없는 투자도 만들기 어렵습니다.

병에 걸리지 않겠다고 보장할 수도 없고, 시장이 폭락하지 않게 만들 수도 없습니다.

그렇다면 준비의 목표가 달라져야 합니다.

위험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위험이 닥쳐도 다시 일어날 수 있게 만드는 것.

첫 번째 쌀독이 버텨줍니다.

두 번째 쌀독이 시간을 벌어줍니다.

세 번째 쌀독은 그 시간 동안 회복하고 성장할 기회를 가집니다.

성호 씨가 말했습니다.

“진짜 안전하다는 게 안 떨어지는 게 아닐 수도 있겠네.”

“그럼?”

“떨어져도 견딜 수 있는 거.”

위험을 피하는 것이 안전이 아니라,

위험을 견딜 수 있는 힘을 갖는 것이 진짜 안전일지도 몰랐습니다.

또 하나의 위험은 돈이 부족해지는 것이 아니라, 돈은 있는데 내가 직접 관리할 수 없게 되는 상황이었습니다. 치매 등으로 판단능력이 떨어졌을 때 통장과 주식, 집을 어떻게 관리할 것인지는 치매가 오면 내 통장과 집은 누가 관리할까?|성년후견·임의후견·신탁의 차이에서 따로 살펴봤습니다.


하지만 ‘견딘다’는 말을 핑계로 무모해져서는 안 됩니다

여기에는 한 가지 중요한 조건이 있었습니다.

성호 씨가 손실을 견딜 수 있는 이유는 마음이 강해서가 아닙니다.

“나는 장기투자자니까 50% 빠져도 버틴다.”

말은 쉽습니다.

그런데 다음 달 생활비가 필요하고 간병비가 급하다면 아무리 강한 사람도 팔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위험감수 능력은 성격만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버틸 수 있는 현금과 시간이 실제로 준비돼 있어야 합니다.

성호 씨가 말했습니다.

“그러니까 니체 읽었다고 주식 80% 하면 안 된다는 거네.”

미영 씨가 웃었습니다.

“니체가 당신 투자손실 책임져준대?”

“안 해주겠지.”

“그럼 쌀독이나 잘 지켜.”

성호 씨도 웃었습니다.

긍정적인 삶과 낙관적인 베팅은 다른 것이었습니다.


오르면 조금 거두고, 떨어지면 시간을 줍니다

두 사람은 관리방법도 단순하게 정했습니다.

세 번째 쌀독의 주식형 자산이 많이 올라 비중이 지나치게 커지면 일부를 덜어 첫 번째와 두 번째 쌀독을 보충합니다.

반대로 주식이 크게 떨어졌다면 생활비 쌀독에 충분한 돈이 있는 동안은 서둘러 팔지 않습니다.

1년에 한 번 정도 세 쌀독을 다시 봅니다.

생활비가 달라졌는지.

연금이 시작됐는지.

건강에 변화가 있는지.

자산 가격이 올라 한 쪽 쌀독만 지나치게 커지지는 않았는지 확인합니다.

미영 씨가 물었습니다.

“정답 비율은 없는 거네?”

“우리 인생이 계속 바뀌는데 비율만 평생 똑같을 수 있겠어?”

성호 씨의 대답이 달라져 있었습니다.


1억2천, 1억4천, 1억6천은 정답이 아니었습니다

세 개의 숫자를 다시 놓고 봤습니다.

쌀독예시 금액역할
삶을 지키는 돈1억2천만원생활비·비상금·의료·돌봄 대응
시간을 버는 돈1억4천만원중기 사용자금·시장 회복 대기
가능성을 키우는 돈1억6천만원장기 성장·물가 대응
합계4억2천만원

이 비율이 모든 58세 은퇴자에게 맞는 것은 아닙니다.

생활비가 300만원인 사람과 600만원인 사람은 다릅니다.

국민연금을 이미 받는 사람과 앞으로 몇 년을 기다려야 하는 사람도 다릅니다.

20억원짜리 집을 계속 보유할 사람과 집을 줄여 금융자산을 늘릴 사람도 다릅니다.

주가가 20%만 떨어져도 잠을 못 자는 사람과 30% 하락을 견딜 수 있는 사람의 포트폴리오도 같을 수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숫자 자체가 아닙니다.

쓸 시간이 가까운 돈일수록 지키고, 시간이 충분한 돈일수록 성장의 기회를 준다.

그 원칙이었습니다.


투자는 돈을 불리는 일이기 전에 선택지를 지키는 일이었습니다

성호 씨에게 4억2천만원은 이제 조금 다르게 보였습니다.

여행을 하고 싶을 때 할 수 있게 해주는 돈입니다.

배우고 싶은 것이 생겼을 때 망설이지 않게 해주는 돈입니다.

새로운 일을 시작했다 실패하더라도 다시 한번 해볼 수 있게 해주는 돈입니다.

아플 때 자녀의 형편부터 걱정하지 않아도 되게 해주는 돈입니다.

그리고 삶의 마지막까지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살아갈 가능성을 지켜주는 돈입니다.

은퇴자산을 지킨다는 말도 조금 다르게 들렸습니다.

금고 안에 돈을 넣어두는 것이 지키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내가 원하는 삶의 선택지를 오래 유지하는 것.

그것이 자산을 지키는 일이었습니다.


“안전한 자산은 삶을 지키고, 위험자산은 가능성을 넓혀주는 거네”

미영 씨가 말했습니다.

“이제 알 것 같아.”

“뭘?”

“첫 번째하고 두 번째 쌀독은 우리가 넘어졌을 때 버티게 해주는 거고.”

“응.”

“세 번째는 앞으로 갈 수 있게 해주는 거네.”

성호 씨가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안전한 자산은 삶을 지탱하고, 위험자산은 삶의 가능성을 넓혀줍니다.

둘 중 하나만으로는 부족했습니다.

모든 돈을 안전자산에 넣으면 오늘의 안정은 커질 수 있습니다.

대신 아주 긴 미래의 구매력과 성장 가능성을 포기할 수 있습니다.

반대로 모든 돈을 위험자산에 넣으면 미래의 가능성은 커질지 몰라도 오늘의 삶이 시장가격에 흔들립니다.

세 쌀독은 그 사이에서 균형을 찾는 방법이었습니다.


은퇴는 후반전의 시작이었습니다

성호 씨는 처음 퇴직했을 때 4억2천만원을 어떻게 하면 잃지 않을지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연금도 계산해보고, 집도 생각해보고, 건강과 간병과 치매까지 고민하고 나니 질문이 달라졌습니다.

그리고 책 한 권이 그 생각을 조금 더 밀어주었습니다.

“이 돈을 어떻게 지킬까?”

에서

“이 돈과 함께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까?”

로.

은퇴는 인생의 종료가 아니었습니다.

첫 번째 직업에서 내려와 새로운 후반전을 시작하는 일이었습니다.

후반전에도 힘든 순간은 올 것입니다.

꽃길만 있을 리 없습니다.

시장이 떨어질 수도 있고, 몸이 아플 수도 있습니다.

생각했던 일이 뜻대로 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아직 오지도 않은 어려움을 두려워하며 모든 가능성을 포기할 필요는 없었습니다.

미영 씨가 말했습니다.

“우리 너무 겁먹고만 살지는 말자.”

성호 씨가 웃었습니다.

“그래.”

“그렇다고 수익률 높다고 쌀독 깨지 말고.”

“알았어.”

“주식 몰빵도 하지 말고.”

“그 얘기는 이제 그만해.”

둘이 웃었습니다.

안전하게만 살겠다고 모든 돈을 멈춰 세우지는 않기로 했습니다.

그렇다고 수익률에 눈이 멀어 쌀독을 깨뜨리지도 않기로 했습니다.

위험이 없는 삶을 기다리지 않습니다.

대신 위험이 와도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준비합니다.

필요할 때 쓸 돈은 지킵니다.

시간이 있는 돈은 일하게 둡니다.

그리고 그 돈을 발판 삼아 두 사람도 계속 앞으로 나아갑니다.

사람은 은퇴했지만,

그들의 삶도,

그들의 돈도,

아직 은퇴하지 않았습니다.


성호·미영 부부와 주변 인물은 이해를 돕기 위해 구성한 가상 사례입니다. 본문의 4억2천만원 자산배분과 각 쌀독의 금액은 자산배분 원리를 설명하기 위한 예시이며 특정 금융상품의 매수·매도를 권유하는 내용이 아닙니다. 실제 자산배분은 생활비, 국민연금 수령시기, 주택 보유 여부, 투자경험, 손실감내 수준, 건강상태와 세금 등에 따라 달라질 수 있습니다.

공식 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