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억 아파트가 있는데 생활비가 부족합니다|집을 줄일까, 주택연금을 받을까?

20억 아파트를 두고 집을 줄일지 주택연금을 받을지 고민하는 58세 부부의 모습

최종 수정일:

“당신은 이 집에서 꼭 계속 살고 싶어?”

며칠 전 아침, 성호 씨가 느닷없이 그렇게 물었습니다.

미영 씨는 젓가락을 내려놓고 남편을 쳐다봤습니다.

“갑자기 그건 왜 물어요?”

성호 씨는 대답하지 않았습니다.

퇴직금을 받고 처음으로 노후생활비를 계산해 본 뒤부터 자꾸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습니다.

집이었습니다.

시세 20억원 정도의 서울 아파트.

15년 넘게 살았고 두 아이도 이 집에서 자랐습니다.

퇴직하면서 주택담보대출 8천만원은 정리했습니다.

지금 부부에게 남은 금융자산은 약 4억2천만원.

결코 적은 돈이 아닙니다.

그런데 지난번 계산에서는 국민연금이 나오기 시작한 뒤에도 생활비 부족분을 금융자산에서 계속 꺼내 쓰다 보면 성호 씨가 70대 초반이 됐을 때 다시 돈 걱정을 해야 할 수도 있다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그 계산의 출발점은 58세 퇴직금 3억, 국민연금 전 6년만 버티면 될까?에서 자세히 살펴봤습니다. 4억2천만원의 금융자산이 있어도 국민연금 전후의 현금흐름을 함께 계산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서 시작됐습니다.

투자수익률도 빼고, 물가도 빼고, 큰 병원비도 없는 아주 단순한 계산입니다.

성호 씨는 여전히 이해가 안됩니다.

집이 20억원인데 왜 생활비를 걱정해야 하지?

그 질문이 며칠째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습니다.


“주택연금 받으면 되는 거 아니야?”

그날 오후 성호 씨는 소파에 앉아 휴대전화를 한참 들여다봤습니다.

검색창에는 ‘주택연금’이라는 글자가 떠 있습니다.

“여보.”

“왜요?”

“이거 하면 되는 거 아니야?”

미영 씨가 빨래를 개다 말고 쳐다봤습니다.

“뭘요?”

“주택연금.”

미영 씨 표정이 바로 굳었습니다.

“벌써요?”

“뭐가 벌써야?”

“우리 이제 쉰여덟, 쉰여섯이에요.”

“가입은 된다는데?”

“가입되면 다 해야 돼요?”

성호 씨가 웃었습니다.

“아니, 그냥 한번 보자는 거지.”

“나는 싫어요.”

대답이 너무 빨라 성호 씨가 오히려 당황했습니다.

“뭐가 싫어?”

“집 가지고 연금 받는 거.”

“왜?”

“평생 마련한 집을 벌써 담보 잡히는 것 같잖아요.”

성호 씨는 대수롭지 않게 말했습니다.

“어차피 여기 계속 살 수 있다는데.”

“당신은 자꾸 돈으로만 보잖아요.”

미영 씨는 빨래를 다시 접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이 집이 그냥 20억짜리 물건은 아니에요.”

성호 씨는 더 말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날 저녁 두 사람은 결국 다시 노트북 앞에 앉았습니다.


20억짜리 집이면 연금도 많이 나올 줄 알았습니다

성호 씨의 첫 번째 생각은 단순했습니다.

집값이 20억원이니 주택연금도 꽤 많이 나올 것 같았습니다.

“우리 집 20억이잖아.”

“그래서요?”

“이 정도면 연금 꽤 나오겠지.”

그런데 가입요건부터 생각과 달랐습니다.

주택연금에 가입할 수 있는지를 판단할 때는 단순히 부동산 중개업소에서 말하는 시세만 보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부부가 가진 주택의 공시가격 등이 12억원 이하인지를 먼저 봅니다.

성호 씨가 공동주택 공시가격을 찾아봤습니다.

12억원 아래였습니다.

“우리 집은 가입 자체는 가능하겠네.”

미영 씨가 화면을 들여다봤습니다.

“시세가 20억인데 공시가격은 12억이 안 돼요?”

“둘은 다르니까.”

“그래도 이상하네요.”

“세금 낼 때도 그렇잖아.”

여기까지는 별문제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월지급금 계산방식을 읽던 성호 씨가 갑자기 화면을 확대했습니다.

“잠깐.”

“왜요?”

“이건 또 뭐야.”

주택연금의 월지급금은 공사가 인정하는 시세나 감정평가액 등을 토대로 계산합니다.

그런데 집값이 아무리 높아도 월지급금 계산에서는 12억원까지만 인정합니다.

성호 씨가 다시 읽었습니다.

“우리 집이 20억이어도 연금 계산은 12억까지만 한대.”

미영 씨가 웃었습니다.

“그럼 나머지 8억은 어디 갔어요?”

“그러게.”

“20억짜리 집 맡기는데 12억짜리처럼 계산해 주는 거예요?”

“집을 맡긴다는 표현부터 좀…”

성호 씨가 말을 흐렸습니다.

미영 씨가 바로 받아쳤습니다.

“봐요. 당신도 맡긴다고 생각하잖아요.”

첫 번째 계산부터 성호 씨가 기대했던 것과 달랐습니다.


“당신 때문에 덜 받는대.”

두 번째로 예상하지 못했던 것은 나이였습니다.

성호 씨는 자기가 58세니까 당연히 자신의 나이를 기준으로 계산하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월지급금은 부부 중 나이가 어린 사람을 기준으로 합니다.

성호 씨 58세.

미영 씨 56세.

기준은 미영 씨였습니다.

성호 씨가 말했다.

“당신 때문에 적게 받네.”

미영 씨가 쳐다봤습니다.

“내가 젊어서 미안하네요.”

둘 다 웃었습니다.

하지만 나이가 두 살 차이 난다는 것이 주택연금에서는 생각보다 중요했습니다.

공식 월지급금 예시를 보니 같은 12억원짜리 일반주택이라도 나이가 올라갈수록 매달 받는 금액이 커졌습니다.

성호 씨가 화면을 넘겼습니다.

“55세는 월 187만원 정도.”

“그다음은요?”

“60세는 252만원 정도.”

“차이가 꽤 나네요.”

“65세는 303만원 정도고.”

성호 씨가 계산기를 집었습니다.

“그럼 지금 받을 이유가 없네.”

“왜요?”

“조금 기다렸다가 받으면 더 많이 나오잖아.”

미영 씨가 바로 물었습니다.

“그 기다리는 동안 생활비는요?”

성호 씨 손이 멈췄습니다.

또 계산이 필요했습니다.


빨리 받으면 적고, 기다리면 통장이 줄어듭니다

미영 씨가 56세인 지금 주택연금을 받기 시작하면 월지급금은 나중보다 적습니다.

반대로 60세가 될 때까지 4년을 기다리면 월지급금은 더 커질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4년 동안 부부의 생활비는 계속 나갑니다.

월 400만원이라면 1년에 4,800만원.

4년이면 단순 계산으로 1억9,200만원입니다.

물론 그사이에 국민연금이 시작되는 시기도 있고 금융자산에서 수익이 날 수도 있습니다.

국민연금을 언제부터 받느냐에 따라서도 이 기다리는 기간의 현금흐름은 달라집니다. 조기수령과 정상수령·연기수령의 차이는 국민연금 조기수령 vs 연기수령, 언제 받는 게 유리할까?|월 220만원 손익분기점 계산에서 실제 금액으로 비교했습니다.

생활비도 매달 정확히 400만원은 아닐 겁니다.

그래도 문제의 모양은 분명했습니다.

일찍 받으면 매달 받는 돈은 적습니다.

늦게 받으면 연금액은 늘지만 그때까지 금융자산을 더 써야 합니다.

성호 씨가 말했습니다.

“이것도 답이 없네.”

“왜 꼭 답이 하나여야 해요?”

미영 씨 말에 성호 씨가 잠시 쳐다봤습니다.

“당신 요즘 철학자 다 됐다.”

“당신이 자꾸 계산기만 들이대니까 내가 이렇게 된 거죠.”

두 사람은 웃었습니다.

하지만 미영 씨에게는 아직 더 큰 문제가 남아 있었습니다.


미영 씨가 가장 걱정했던 것은 돈이 아니었습니다

“그래도 나는 이게 싫어요.”

미영 씨는 여전히 주택연금 화면을 보고 있었습니다.

“뭐가?”

“집이 없어지는 느낌.”

성호 씨가 말했습니다.

“없어지는 게 아니라니까.”

“당신은 자꾸 그렇게 말하는데, 그럼 뭐예요? 집을 은행에 넘기는 거잖아요.”

성호 씨가 잠깐 말을 멈췄습니다.

“그러니까 그게, 완전히 넘기는 건 아니고…”

미영 씨가 쳐다봤습니다.

“봐요. 당신도 정확히 모르잖아요.”

성호 씨는 할 말이 없었습니다.

노트북을 다시 자기 앞으로 끌어당겼습니다.

“잠깐만. 제대로 보자.”

한참 뒤 성호 씨가 말했습니다.

“여기 보니까 담보 잡는 방식이 두 가지래.”

“집 하나로 왜 방식이 두 개나 있어요?”

“하나는 저당권 방식.”

“그건 뭔데요?”

“우리가 아는 주택담보대출하고 비슷한 거지. 집에 1순위 근저당권을 설정하고 연금을 받는 거야. 등기상 소유자는 계속 우리고.”

미영 씨 표정이 조금 나아졌습니다.

“그러면 그걸 하면 되잖아요.”

“잠깐. 다른 방식도 들어봐.”

“뭔데요?”

“신탁 방식.”

“그건요?”

성호 씨가 화면을 보며 천천히 읽었습니다.

“이건 주택 소유권을 한국주택금융공사에 신탁등기하는 거래.”

미영 씨 목소리가 바로 높아졌습니다.

“거봐요. 넘기는 거 맞잖아요.”

“아니, 그러니까…”

“소유권이 공사로 넘어간다면서요.”

“등기상으로는 그런데, 우리가 여기서 계속 살고 사용하는 권리는 그대로 보장된대.”

미영 씨는 믿기지 않는 표정이었습니다.

“등기가 우리 이름이 아닌데 우리 집처럼 산다고요?”

“응.”

“그게 무슨 우리 집이에요.”

성호 씨도 처음에는 이해가 잘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조금 더 읽었습니다.

“주택연금 자체가 가입자하고 배우자가 평생 여기 거주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구조래.”

“저당권이든 신탁이든요?”

“응.”

미영 씨는 팔짱을 끼었습니다.

“말은 다 좋게 써놓겠죠.”

“또 시작이네.”

“내 집인데 내가 불안한 게 이상해요?”

“아니.”

이번에는 성호 씨가 바로 물러섰습니다.


“당신이 먼저 죽으면 나는요?”

잠시 뒤 미영 씨가 물었습니다.

“그런데 당신이 먼저 죽으면 어떻게 돼요?”

성호 씨가 농담처럼 말했습니다.

“왜 내가 먼저 죽어?”

“이런 거 계산할 때는 그런 것도 봐야 한다면서요.”

지난번 성호 씨가 했던 말이었습니다.

성호 씨는 다시 자료를 읽었습니다.

“이것도 방식마다 조금 다르네.”

“또요?”

“저당권 방식은 내가 먼저 죽으면 당신이 집 소유권을 전부 확보하고 주택연금을 승계해야 한대.”

“집은 원래 우리 집인데 뭘 또 확보해요?”

“내 지분을 상속받아야 하니까. 애들이 공동상속인이 되면 동의를 받아야 할 수도 있고.”

미영 씨 눈살이 찌푸려졌습니다.

“민수하고 수진이한테 도장 받아야 한다는 얘기예요?”

“상황에 따라 그런 절차가 필요한 거지.”

“애들이 설마 반대하겠어요?”

“반대한다는 얘기가 아니라, 절차가 있다는 거야.”

미영 씨가 한참 생각하다 물었습니다.

“신탁은요?”

성호 씨가 다시 화면을 봤습니다.

“신탁방식은 처음 가입할 때 당신을 사후수익자로 정해 놓으면 승계가 더 간단하대. 별도로 집 소유권을 당신 앞으로 상속등기하는 절차 없이 연금을 이어받을 수 있고.”

미영 씨가 조금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습니다.

“아까는 소유권 넘어간다고 싫었는데, 그게 이럴 때는 오히려 편하네요.”

“그러네.”

두 사람은 잠시 아무 말이 없었습니다.

한 제도를 놓고도 어떤 부분은 단점처럼 보였다가 다른 상황에서는 장점이 됐습니다.


그래도 미영 씨 마음은 쉽게 풀리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나는 신탁은 좀 싫어요.”

미영 씨가 다시 말했습니다.

성호 씨가 웃었습니다.

“아까는 장점도 있다며.”

“장점 있는 거하고 내가 좋아하는 거하고는 다르죠.”

그 말에 성호 씨도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미영 씨가 거실을 둘러봤습니다.

벽에 걸린 가족사진.

아이들이 어릴 때 긁어놓은 방문 한쪽.

오래전에 바꾼 마루.

매년 봄이면 햇빛이 들어오는 거실 창.

“나는 여기서 늙고 싶어서 이 집 산 거예요.”

성호 씨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나중에 당신 먼저 죽고 혼자 남더라도 여기서 살고 싶고.”

“알아.”

“그런데 서류상으로라도 내 집이 아니라는 건 싫을 수 있잖아요.”

“그럴 수 있지.”

“돈 몇십만원 더 받고 덜 받고 그런 문제가 아니에요.”

이번에는 성호 씨도 설득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주택연금의 구조를 안다고 해서 미영 씨 마음까지 바로 바뀌어야 할 이유는 없었습니다.

한참 뒤 미영 씨가 말했습니다.

“저당권 방식이면 등기는 계속 우리 이름이라고 했죠?”

“응.”

“그건 그나마 덜 싫네요.”

“신탁은 선택이지, 꼭 해야 하는 건 아니야.”

미영 씨 표정이 조금 풀렸습니다.

하지만 완전히 편해진 얼굴은 아니었습니다.

“뺏기는 건 아니라는 건 알겠어요.”

“응.”

“그런데 그거하고 별개로 나는 아직도 이걸 지금 당장 해야 하는지는 모르겠어요.”

성호 씨도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건 나도 모르겠어.”

제도를 이해한 것과 그 제도를 선택하는 것은 다른 문제였습니다.


“그러면 우리 둘 다 죽고 나면요?”

미영 씨는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우리 둘 다 죽고 나면 집은 어떻게 돼요?”

“그때는 정산한대.”

“어떻게?”

“집을 처분해서 그동안 받은 연금하고 이자 같은 걸 정산하는 거지.”

“집값이 더 많이 남으면?”

“남은 돈은 상속인한테 가고.”

“민수하고 수진이한테?”

“그렇지.”

미영 씨가 잠시 생각했습니다.

“반대면요?”

“뭐가?”

“우리가 오래 살아서 받은 돈이 집값보다 더 많아지면요?”

성호 씨가 자료를 다시 읽었습니다.

“그 부족액을 애들한테 더 내라고 하지는 않는대. 집 처분하고도 부족하면 그 부족액은 공사가 부담하는 구조래.”

미영 씨가 다시 확인했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예상보다 오래 살아도 애들한테 빚이 넘어가지는 않는 거네요?”

“응. 그 부분은 그렇대.”

미영 씨가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리고 잠시 뒤 물었습니다.

“그럼 공짜예요?”

성호 씨가 웃었습니다.

“설마.”


역시 공짜로 매달 돈을 주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성호 씨가 이번에는 비용을 찾아봤습니다.

주택연금은 정부가 매달 생활비를 그냥 지급하는 복지급여가 아닙니다.

집을 담보로 노후의 현금흐름을 만들어 사용하는 금융상품에 가깝습니다.

“처음에 보증료도 있네.”

“얼마인데요?”

“신규 가입자는 초기보증료가 주택가격의 1%.”

미영 씨가 바로 계산했습니다.

“12억 기준이면 1,200만원이잖아요?”

“응. 그리고 연보증료도 있고.”

“생각보다 적지 않네요.”

“연금 받아갈수록 지급받은 돈하고 이자 같은 것도 쌓이고.”

미영 씨가 말했습니다.

“그러니까 결국 우리 집을 조금씩 먼저 쓰는 거네요.”

성호 씨가 잠시 생각하다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 표현이 제일 정확할 수도 있겠다.”

주택연금은 공짜 돈도 아니었습니다.

그렇다고 집을 헐값에 빼앗기는 제도도 아니었습니다.

집에 묶여 있는 자산을 살아 있는 동안 조금씩 생활비로 바꾸어 쓰는 방법에 가까웠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니 두 사람 모두 제도가 조금 다르게 보였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질문은 남았습니다.

지금부터 그 집을 써야 하는가?


며칠 뒤, 미영 씨가 먼저 집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성호 씨는 주택연금 자료를 한동안 더 찾아봤습니다.

그런데 며칠 뒤 뜻밖에도 미영 씨가 먼저 다른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여보.”

“왜?”

“꼭 주택연금만 볼 필요는 없는 것 같아요.”

“그럼?”

“집을 줄이면 되잖아요.”

성호 씨가 아내를 쳐다봤습니다.

“당신 이 집에서 늙고 싶다며.”

“그러니까 당장 나가겠다는 게 아니라.”

“그런데?”

“계산은 해볼 수 있잖아요.”

며칠 전 부동산 중개업소 앞을 지나면서 같은 생활권에 있는 작은 평수 아파트 매물을 봤다고 했습니다.

“20억짜리 집 팔고 12억짜리 집으로 가면 차이가 8억이에요.”

“취득세도 있고 중개수수료도 있고 이사비도 있지.”

“알아요. 그러니까 8억이 그대로 남는다는 이야기는 아니죠.”

미영 씨가 웃었습니다.

“나도 이제 당신한테 좀 배웠어요.”

성호 씨는 웃지 않았습니다.

막상 작은 집으로 이사한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마음이 불편했습니다.

“나는 이사 싫어.”

“며칠 전에는 나한테 이 집에서 꼭 살아야 하냐고 물었잖아요.”

“그건 그냥 물어본 거지.”

“그러니까 나도 그냥 계산해보자는 거예요.”

성호 씨는 더 할 말이 없었습니다.


20억원짜리 집을 지키는 데에도 대가가 있습니다

돈만 놓고 보면 집을 줄이는 선택은 강력합니다.

20억원짜리 아파트를 팔고 12억원 정도의 주택으로 옮기면 상당한 현금을 확보할 수 있습니다.

그 돈은 생활비가 될 수도 있고,

예금이나 채권에 넣을 수도 있고,

자동차를 바꾸는 데 쓸 수도 있고,

여행을 갈 수도 있고,

나중에 자녀에게 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성호 씨는 돈 이야기를 하다가 문득 생각했습니다.

매일 아침 걷는 산책길.

10년 넘게 다니는 병원.

친구들과 만나는 식당.

어느 자리가 주차하기 편한지까지 다 아는 지하주차장.

겨울 오후 몇 시쯤 거실 안쪽까지 햇빛이 들어오는지도 압니다.

집을 옮기는 것은 자산 8억원을 현금으로 바꾸는 거래만은 아니었습니다.

익숙한 생활을 함께 바꾸는 일이었습니다.

미영 씨에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두 아이가 자란 집이고 부부가 가장 오래 산 집이었습니다.

그래서 두 사람의 질문은 조금씩 달라졌습니다.

처음에는,

“20억원짜리 집으로 돈을 얼마나 만들 수 있을까?”

였습니다.

이제는,

“이 집에서 계속 살기 위해 우리는 얼마까지 포기할 수 있을까?”

가 됐습니다.


성호 씨가 세 가지 길을 적었습니다

저녁 식사를 마친 뒤 성호 씨가 노트를 꺼냈습니다.

그리고 세 줄을 적었습니다.

1. 지금 집에서 계속 살면서 금융자산 4억2천만원을 먼저 사용한다.

2. 집은 그대로 유지하고 주택연금으로 생활비를 보충한다.

3. 집을 줄여 이사하고 차액을 노후자금으로 바꾼다.

미영 씨가 물었습니다.

“뭐가 제일 좋아요?”

성호 씨가 대답했습니다.

“모르겠어.”

예전 같으면 그 말이 답답했을 겁니다.

이번에는 달랐습니다.

세 가지 모두 장점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세 가지 모두 무엇인가를 포기해야 했습니다.

첫 번째는 지금 생활을 그대로 지킬 수 있지만 금융자산이 계속 줄어듭니다.

두 번째는 집을 떠나지 않고 현금흐름을 만들 수 있지만 집에 들어 있는 자산을 살아 있는 동안 먼저 쓰기 시작합니다.

세 번째는 가장 큰 현금을 한꺼번에 확보할 수 있지만 지금의 집과 익숙한 생활을 포기해야 할 수도 있습니다.

성호 씨가 물었습니다.

“당신은 뭐가 좋아?”

미영 씨가 한참 생각했습니다.

“지금은 셋 다 싫어요.”

“그게 무슨 답이야.”

“그러니까 아직 결정하지 말자는 답이죠.”

성호 씨가 웃었습니다.

“그건 꽤 좋은 답인데.”


“우리가 집을 지키려고 돈을 모은 걸까?”

한참 뒤 미영 씨가 물었습니다.

“여보.”

“응.”

“우리가 이 집을 지키려고 평생 돈을 모은 걸까요?”

성호 씨가 아내를 바라봤습니다.

미영 씨가 말을 이었습니다.

“아니면 잘 살려고 돈도 모으고 집도 산 걸까요?”

성호 씨는 대답하지 못했습니다.

20억원짜리 아파트.

4억2천만원의 금융자산.

앞으로 받을 국민연금.

그리고 두 사람이 앞으로 살아갈 시간.

어느 하나만 떼어놓고 답을 낼 수 있는 문제는 아니었습니다.

성호 씨는 세 가지 선택지 아래에 문장을 하나 더 적었습니다.

이 집을 언제부터 생활비를 만드는 자산으로 볼 것인가.

주택연금을 지금 받을 것인지,

조금 더 기다릴 것인지,

집을 줄일 것인지,

아니면 당분간 집은 전혀 건드리지 않을 것인지.

아직 답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지난번 계산을 했을 때보다 마음은 조금 편했습니다.

결론을 얻었기 때문은 아니었습니다.

무엇을 고민해야 하는지가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성호 씨는 노트를 덮으려다가 다시 펼쳤습니다.

“그런데 말이야.”

“또 뭐요?”

“우리 통장에 남아 있는 4억2천 있잖아.”

“네.”

“그걸 그냥 예금에 넣어두는 게 맞나?”

미영 씨가 웃었습니다.

“또 시작이네요.”

성호 씨가 계산기를 식탁 가운데로 끌어왔습니다.

이번에는 집이 아니라,

현금이 문제였습니다.

4억2천만원을 예금에만 둘 것인지, 아니면 생활비가 나오는 투자상품으로 굴릴 것인지가 다음 고민이 됐습니다. 연 12% 수준의 분배금을 내세운 커버드콜 ETF를 놓고 실제로 계산해본 내용은 퇴직 후 4억2천, 연 12% ETF에 넣으면 생활비가 해결될까?|은퇴자의 쌀독 계산에서 이어집니다.


※ 이 글의 인물과 상황은 은퇴 이후 실제로 마주칠 수 있는 재무적 선택을 살펴보기 위해 재구성한 허구의 이야기입니다. 주택연금의 실제 가입 가능 여부와 월지급금은 연령, 주택가격, 주택 수, 담보방식, 지급방식 등 개인별 조건에 따라 달라집니다. 제도 내용은 2026년 8월 현재 공개된 공식자료를 기준으로 확인했습니다.

공식 자료